- 저자
- 박동수
- 출판
- 민음사
- 출판일
- 2022.06.17
철학자 이졸데 카림에 따르면 우리는 다원화 시대를 살고 있다.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기에 어떤 것이 맞고 어떤 입장이 옳은지를 두고 끝없이 다투는 시대, 다양한 정체성들이 서로 경합하는 시대, 동질적이고 통일적인 사회를 찾을 수 없는 시대다.
우리는 더 이상 하나의 민족 유형이나 하나의 세대, 하나의 성별만으로는 한국인 전체의 이미지를 대표할 수 없는 복잡하고 다원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 나와 타자들이 알게 모르게 공존하고 있는 이 사회를 카림은 '다원화 사회'라 부른다.
… 그러나 다문화 배경을 가진 소수자 학생을 '다문화'라고 부르면서 차별하는 최근의 사례가 보여주듯 성찰 없이 사용되는 양식 있는 언어는 힘도 진리도 지니지 못한다.
비평가이자 철학자 가라타니 고진은 『탐구』에서 “데카르트에게 ‘의심하는’ 것이란 바로 ‘생각하는’ 것이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원화가 우리 각자 안에 자리 잡은 다양성을 의미하게 되면서 나의 정체성은 ‘감소’되기에 이른다. 나는 더 이상 당연하고 완전하고 온전한 나가 아니며, 그 정체성은 항상 의문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정체성들 간의 갈등이란 실은 다원화 사회 속에서 각각의 정체성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다원적 태도와 반다원적 태도 사이의 갈등이라는 것이다. … 어쩌면 오늘날 다원화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정체성의 편집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로 퀴어문화축제는 현실화된 만남 구역의 사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성소수자들이 정체성을 드러낼 기회를 갖게 하는 동시에 그들의 현존을 ‘노출’함으로써 같은 도시의 시민들이 그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정체성들 간의 만남이 적대와 혐오로 귀결되지 않으려면, 그리고 정체성을 영원히 감추고 살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런 축제의 공간에 대해 더욱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어쩌면 오늘날 인문학의 영향력이 급속히 쇠퇴한 것은 20세기 인문 사상의 근간에 있는 인간 개념의 한계 때문은 아닐까? 가족에서 시민으로, 시민에서 국민으로, 그리고 국민에서 세계 시민으로 상승하는 단선적인 진보 서사만이 정치의 유일한 회로일까?
그러나 지식인과 대중을 가르고 진정성 있는 정치적 인간만을 성숙한 시민으로 간주하려는 인문학자들의 태도는 현실 정치 바깥에 있는 또 다른 공공성과 정치를 보지 못하게 만들고, 끊임없이 친구와 적을 구분하는 근대 인문 사상의 뒤틀린 구조를 반복할 뿐이다.
아즈마는 전 세계의 경제는 연결되어 있으나 정치는 분리되어 있는 시대, 욕망은 연결되어 있으나 정체성은 분리되어 있는 시대를 가리켜 ‘이층 구조 시대’라고 부른다.
그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가족 유사성’의 원리를 빌려와서 가족이라는 말을 단순히 “친밀하고 폐쇄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그 정체성이 새로운 국면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속에서 끊임없이 정정되고 갱신되며 오히려 그 역동성에 의해 지속되는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가족이라는 범주 그 자체는 폐쇄적이지 않다. 가족 유사성과 애정에 의해서 얼마든지 바깥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가족에는 존재한다. 이 점에서 가족의 철학이란 정정 가능성의 철학이다.
우리는 철저히 역사적인 산물이며 스스로를 만들어 가야 할 아이러니한 존재다. 독특하고 특이한 개인들의 사회에서 전통 철학이 추구해 왔던 보편적인 진리는 더 이상 연대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비정상적 정의의 문제가 대두되는 근본적 이유는 심지어 정의라는 것도 보편적 진리나 인간 본성에 토대를 두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세대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논쟁되고 수정되며 다시 쓰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의로움의 의미는 역사적 우연성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의 유한성과 우연성이란 그저 철학과 진리의 한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평으로서의 철학이 성립하기 위한 기본 조건인 셈이다.
어쩌면 이 제어할 수 없는 다양성의 분출에 붙여진 최초의 이름이 낭만주의였다고 볼 수도 있겠다.
낭만주의는 17~18세기 유럽의 가장 지배적인 사상이었던 계몽주의가 가장 높은 곳에 이르렀을 때 등장한 계몽 이후의 운동이다.
낭만주의의 시조들이 깨달은 것은 가치란 자연적 본성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 사회, 자아와 투쟁하는 과정에서 인간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그리하여 계몽주의 시대에는 보편적 지식이 곧 덕이었지만, 낭만주의 운동 이후로는 자기에 대한 진실성 혹은 진정성이 그 자체로 덕이 된다.
사상이란 마치 물과 같다.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이 말하듯 “물고기가 전혀 알지 못하는 한 가지는 바로 물이다. 왜냐하면 물고기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요소를 지각할 수 있는 반(反)환경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낭만주의는 결국 개인의 불굴의 의지, 개인의 신념과 이상을 강조하면서 원래의 의도와는 반대로 타인의 의지를 인정하고 타협할 필요성을 불러일으켰다. 인류는 타인의 이상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신의 이상도 인정받을 수 없음을 역사를 통해 배우게 된 것이다. 낭만주의가 우리에게 남긴 진정한 유산은 바로 이 관용과 이해의 정신이다.”
지식의 다원화, 세계관의 다원화가 공통교양의 상실을 불러왔기에 어쩌면 우리의 시야는 더 협소해졌는지도 모른다.
‘과학적인’ 태도라고 부르는데, 흥미롭게도 물리학자 김상욱 역시 이구동성으로 “과학이란 논리라기보다 경험이며, 이론이라기보다 실험이며, 확신하기보다 의심하는 것이며 ……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라고 말한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자율적인 개인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말하지만, 실제 현실을 들여다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을 대신해 주는 알고리즘이나 전문가의 말에 의지하고 있을 뿐이다.
문화이론가 마크 피셔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울증적 쾌락”에 빠져 있다고 진단하는데, 이는 소소한 쾌락을 추구하는 것 말고는 어떤 의미 있는 일도 하지 못하는 허무하고 무기력한 상태를 말한다. 우리는 무언가에 빠져 있다고 느끼지만 진정한 만족은 느끼지 못하고, 무언가에 열광하지만 동시에 한없이 권태로워하기도 한다.
우리는 거대 이념의 붕괴나 거대 서사의 몰락으로 인해 극적이고 역사적인 실망감을 느낀다기보다는 무수한 선택지들 사이에서 확신에 찬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무능으로 인해 옅은 우울감에 젖은 일상 속을 살아갈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인은 시시각각 변화되는 상황과 세계에 “끝없이 공명하는 삶”의 태도를 따른다. 오히려 상황이 주는 의미와 기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이미 주어져 있는 세계와 공명하고 그로부터 행복과 의미를 재발견하는 삶의 방식이다. 그래서 드레이퍼스와 켈리는 “우리 자신만이 우리 행동의 유일한 원천이라는 현대인의 생각은 포기되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신분주의란 학교, 시장, 주거 등에서 계층적인 분리가 뚜렷해지고 부자와 이등 시민 사이에서 일종의 신분적 구분이 나타나는 불평등한 사회 현상이다.
『사람, 장소, 환대』에서 말하는 절대적 환대라는 무조건적 요구가 나의 개입, 나의 책임, 나의 행위와 분리된 채 그저 사회가 제공해야 하는 공공성의 중립적인 문제로만 남을 때 오히려 환대는 신성하지만 무책임한 것으로,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로 남게 될 위험에 처한다.
다원화의 형태만큼이나 그에 대응하는 수많은 방어 형태가 출현하는 것은 이렇듯 환대의 어려움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시선은 그 좋음이 어떻게 숨어 있는 도덕적 배제를 정당화하는지를 인식하는 쪽을 향해야 한다. 절대적 환대를 꿈꾸기보다 우리가 제한된 환대 위에 서 있다는 분명한 인식, 경계의 희생자에 대한 주목, 그리고 그 제한된 환대를 확장하려는 마음이 긴요하다.
공적 공간에서 우리 편, 잘 아는 사람을 타인보다 더 배려하는 우정은 실상 타자가 없는 척하는 것이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하게 제공할 수 없는 이상 우정과 환대는 늘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모든 곳에 아무런 성찰 없이 적용될 수 있는 순수한 도덕 이념만을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누가 포함되고 누가 배제되고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는 데 있다.
「반려종 선언」은 인간과 오랜 시간 동안 함께해 온 개라는 존재가 그저 우리와 독립된 다른 종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반려종이라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 마치 인류학이라는 학문의 기원에 서구의 제국주의가 불가분의 관계로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개와 인간의 관계에도 여러 불행한 역사적 유산이 잠재되어 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생태 위기의 밑바탕에는 우리 바깥의 타자를 오직 그들로만 여기는 인식론적 위기가 숨겨져 있다. 상징적 사고의 폐쇄성과 생태 위기는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 재해라는 말이 인간이 통제하거나 개입할 수 없는 대자연의 순환 현상을 일컫는다면, 자연의 정치라는 말은 그런 자연 현상이 결코 인간의 정치경제적 행위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행동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계의 실상에 대해 서술하고 묘사해야 한다. 서술의 단계를 생략할 수 있는 정치는 없다. 공유된 경험 없이는 그 어떤 위기도 그 자체로 인식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지불식
생각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
간명
간에 새긴다는 뜻으로, 마음에 깊이 새겨 잊지 아니함.
기꺼운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쁘다.
즉물적
관념이나 추상적인 사고가 아니라 실제의 사물에 비추어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해관계를 우선으로 물질적인 면을 중시하는.
병존하다
두 가지 이상이 함께 존재하다.
폐색
닫혀서 막힘. 또는 닫아서 막음.
운수가 막힘.
양의성
두 가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성질.
왕정복고
공화 정체나 그 밖의 다른 정체가 무너지고 다시 군주 정체로 되돌아가는 일.
발흥
갑자기 일어나 한창 잘되어 나감.
어떤 일이나 현상이 일어남.
메타적
어떤 것의 범위나 경계를 초월하거나 아우르는. 또는 그런 것.
성원
어떤 사회나 단체 또는 조직을 구성하는 사람.
회의 성립에 필요한 인원.
입지점
인간이 경제 활동을 하기 위하여 입지하는 곳.
인정 투쟁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인정을 받기 위한 싸움. 상대편을 굴복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편에게서 자신을 확인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명예를 위한 싸움이며, 무조건적으로 상대편을 제압하려는 목적보다는 자신의 명예를 확인하려고 하기 때문에 자기의식적이며 정신적인 성격을 지닌다.
유보
어떤 일을 당장 처리하지 아니하고 나중으로 미루어 둠.
일정한 권리나 의무 따위를 뒷날로 미루어 두거나 보존하는 일.
동인
어떤 사태를 일으키거나 변화시키는 데 작용하는 직접적인 원인.
무한소
더할 수 없이 작음.
설파
어떤 내용을 듣는 사람이 납득하도록 분명하게 드러내어 말함.
상대편의 이론을 완전히 깨뜨려 뒤엎음.
원전
기준이 되는 본디의 고전.
베끼거나 번역한 책에 대하여 그 본디의 책.
지평
편평한 대지의 끝과 하늘이 맞닿아 경계를 이루는 선.
사물의 전망이나 가능성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전일적
하나의 전체로서 완전히 통일을 이루고 있는 것.
동렬
같은 수준이나 위치.
주지주의
일반적으로 감정이나 행동보다는 지성이나 이론, 사유 따위의 지적인 것을 중시하는 사상. 진리는 이성에 의하여 얻어진다고 보는 합리주의적 사상.
관조적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 보는 것.
행동력이 없이 무관심하게 보거나 수수방관하는 것.
전회
과거에 한 일에 대한 뉘우침. 또는 전의 실수.
정태적
과거에 한 일에 대한 뉘우침. 또는 전의 실수.
형용 모순
형용하는 말이 형용을 받는 말과 모순되는 일. 가령 ‘둥근 사각형’과 같은 것이다.
되먹임
생체 내의 대사 과정 가운데 물질의 합성이나 분해 과정 등에서 생성된 중간 산물이나 최종 산물에 의해 대사 과정이 조절되는 작용.
황당무계하다
말이나 행동 따위가 참되지 않고 터무니없다.
임계
사물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분간되는 한계.
어떠한 물리 현상이 갈라져서 다르게 나타나기 시작하는 경계.
노병
경험이 많아 노련한 병사.
어떤 일에 종사한 지 오래되어 경험이 많고 노련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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